용면 쌍태리 추월산 아래 포근히 자리한 죽림정사(竹林精舍). 우리나라 천문지리의 원조라 일컫는 도선국사 결록에 담양 추월산하에 성인이 중출한다는 대명지가 있다고 전해 지는데 그곳이 바로 ‘죽림정사’라고 스님들은 믿고 있다. 명상으로써 치유하는 도량을 꿈꾸며 주지 소임을 성실히 수행 중인 지홍스님을 본지가 만났다. 지홍스님은 전남대학교 국문학과를 나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명상상담심리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죽림정사에서 일요법회 지도법사로 있으면서 다양한 명상상담 프로그램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치유를 통한 수행불교 연구와 그 실천을 위해 정진하고 있다./편집자 주

■나는 지금 이대로 좋은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사랑이라고 봅니다.
올 봄부터 꽃밭을 만들어 가꾸면서 제 안에 있는 사랑의 능력을 한껏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꽃들이 잡초 속에 묻힐까바 여름내내 그들을 돌보며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몸은 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그지없이 행복했습니다. 꽃들이 이토록 예쁘다는 것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느꼈습니다. 새싹들이 흙을 뚫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대견스러웠는지....
저마다 자신의 색깔로 형형색색의 꽃들을 피워내는데, 그 기쁨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제 손으로 정성스레 돌봤기 때문에 그 감동이 컸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도량에서 꿈꾸는 삶이 마치 저 꽃들과 같습니다. 저마다 자신이 지닌 능력을 이 도량에서 자기답게 피워내는 것,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자기 모습에 자긍심을 가지고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힘 앞에 주눅이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자기 역할을 하며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함께 조화롭게 사는 것입니다.
자기 삶을 주인답게 살지 못한 것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라고 봅니다. 우리 문화는 위계 질서로 상하관계가 확실합니다. 수평적인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상태에서 수직적인 관계로만 길들여진 우리는 지배와 복종의 굴레로 스스로를 가두며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배의식에 사로잡히면 휘하에 있는 사람들을 칭찬과 벌을 주면서 마음대로 조종할려고 합니다.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노예의식에 길들여지면 타인이 지시하며 시키는 일만 하게 됩니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된 자는 자기 책임하에 모든 것을 실행하고 그 결과에 대해 남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을 신뢰하며 책임을 집니다. 자신을 비판하며 죄책감을 갖는 것까지도 어찌보면 자신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 말, 생각에 대해서 온전하게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이 서면, 비로소 어떤 비판과 비난도 감당하면서 수용해 낼 수 있다고 보아집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의 선행조건은 책임감이라고 봅니다. 긍정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모습도, 내 모습이기 때문에 불평불만하지 않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선행되어야만 자기에 대한 참사랑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누가 나를 돌보아 주겠습니까? 나를 돌보지 않고 상대를 돌보게 되면 척하게 됩니다.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현실 속의 나는 무의식적인 자신의 본능이나 감정을 방어하는데 자동적이며 익숙합니다. 이런 나를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며 관찰하는 힘이 있어야만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만큼은 정직해야 온전하게 자신을 책임지게 됩니다.
자신을 향해서 ‘나는 지금 이대로 내가 좋은가?’ 한 번 물어 보십시오!

■명상으로써 치유하는 도량을 꿈꾸다
저는 어려서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워 가족들을 돕느라 마음껏 뛰어 놀았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권위적인 부모님 밑에서 다소 엄한 훈육을 받으며 성장하다보니 칭찬보다는 꾸지람을 많이 받아 자존감이 다소 낮았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착한 자식이었고 학교에서는 모범생이자 우등생이었지만 저는 말이 없는 조용한 아이였습니다.
때론 권위적인 힘 앞에 주눅이 든 자신의 모습이 느껴질 때에는 초라하고 부끄러워 그 어딘가로 숨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가슴 한켠은 늘 쓸쓸했지 싶습니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지 못하고, 싫은 것을 싫다고 거절하지 못한 자신이 창피해서 그런 자신을 보고 싶지 않아 저는 곧잘 어설픈 웃음으로 무마하곤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쯤인가 ‘폭풍의 언덕’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제 안에서 폭발적으로 피어오르는 열정을 느끼며, 순간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이 느껴졌습니다. 자연 속에서 피어난 순수한 사랑, 그것에 대한 강렬한 끌림으로, 저는 문학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고 소질없는 자신에게 이내 좌절되었습니다. 대학 2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거칠고 냉혹한 현실에 대해 차츰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부터 나름 현실에 대해 심각한 번민과 방황으로 삶에 대한 의욕상실까지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불교를 만나 인간에 대한 희망으로써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삶, 그 목표를 향해서 부단하게 정진하며 수행자로서 열심히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가 제가 그러하였듯이 명상을 통해 사람들의 가슴에 있는 아픈 상처들을 치유해 주면서 주인으로서 함께 나누는 삶입니다.
그리하여 작년에 죽림정사 주지 소임을 맡으면서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개인을 치유하는 탬플스테이를 열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내용으로는 대통밥 사찰음식체험과 가족의 마음치유, 황토길 걷기명상과 힐링운동체험 등등입니다.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미비하지만 앞으로 하나하나 조건들을 개선해 치유도량으로써 면모를 갖추어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한달에 한 번 셋째주 일요일에 ‘참나를 사랑하는 모임’이 주체가 되어 인문학, 명상, 노래, 춤 등을 통합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내안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그 감정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마음을 명상과 노래와 춤을 통해서 정화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종교를 초월해서 뜻이 있으신 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죽림정사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충분히 아름답고 신령스러운 도량이라고 자부합니다.
추월산 아래 자리잡은 죽림정사는 많은 이들의 원력이 깃든 절입니다. 1988년 보리원 큰스님의 지도하에 젊은 비구니스님들 20여분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곳은 대나무와 가시나무가 전부였습니다. 당시 스님들은 손수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낫과 삽을 들고 터전을 닦았고, 천막 속에서 목수들에게 밥을 해 주며 스님들이 직접 흙을 나르면서 불사의 현장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이곳은 젊은 비구니 스님들의 청춘의 열정과 땀이 뿌려진 곳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신심 있는 단월 시주자들의 간절한 정성스런 불사금의 시주가 있었기에 선방 극락전 요사체를 짧은 시간내에 지어 대가람으로써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창건되어 은사이신 정모스님께서 주지직을 맡아 소임을 살으셨고, 그 뒤를 이어 사형이신 지윤스님께서 주지 소임을 맡으며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로써 면면히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각처에서 수행정진하시던 스님들이 죽림정사를 창건할 때의 초심을 찾자하여 2013년에 ‘보리원회’라는 문도대중 모임을 만들어 대가람으로써 죽림정사 중창불사의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죽림정사는 주위 경관이 수려하고 아름답습니다. 주위가 연꽃처럼 에워싼 여러 산봉오리는 일원상을 이루었으며 좌우의 기암이 사자와 호랑이처럼 위엄을 떨치고 있는 형상입니다. 도선국사 풍수지리 결록에 나올 정도로 명당터인 이곳에서 80여분의 성인이 출현하신다는 예언의 말씀이 있는 곳답게 신령스러운 기운이 가득 뻗치는 도량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저희 죽림정사가 건립된 후 주위에는 많은 펜션들이 들어섰으며, 전원주택들도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 중심에 있는 죽림정사는 지역민들의 쉼터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문화 공간으로써도 적합하리라 보아집니다.
따라서 앞으로 죽림정사가 지역민 뿐만 아니라 일상에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도 열린 공간으로써 마음을 치유하면서 쉬어가는 엄마의 품속같은 그런 따뜻하고 아늑한 도량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대담=김관석 부국장